-
국내최고의 조선초기 족보 발견|미하버드대「와그너」교수 1476년『안동권씨족보』공개
외국인 한국학자가 우리나라 최고의 족보를 찾아내 학계의 관심을 끌고있다. 미 「하버드」대 동양학과 「에드워드·D·와그너」교수가 발견한 이 족보는 『안동권씨족보-성화병신보』다. 국립
-
(2437)제62화 재일한국거류민단(25)
조련이 자행한 각가지 폭력행위에 관해서는 여러 번 언급한 바 있거니와, 마침내 여기에 철퇴가 가해졌다. 1949년 9월8일 일본정부는 「우에따」(식전준길) 법상의 고시를 통해 조
-
일제때 퇴학당한 독립유공자에 52년만에 명예졸업장
남편대신 졸업상 받은 부인도 감격의 눈물. 일제에 항거했다하여 졸업을 15일 앞두고 퇴학당하고 끝내는 옥살이를 치르던중 숨진 독립유공자에게 52년만에 졸업장이 수여됐다. 20일 하
-
(1896)배재학당(고종황제가 1886년 하사한 현판의 글씨)(52)|이중졸업|윤성열(제자·윤성열)
4년제였던 배재고보는 1922년4윌 일본 문부성의 조선 교육령에 의해 5년제로 개편됐다. 배재는 5년제로 된 후에도 학당과 「고보」가 여전히 일원적으로 운영됐다. 일일이 총독부당국
-
(1895)|배재학당-고종황제가 1886년 하사한 현판의 글씨(50)-배재학당
기독교연합대학인 배재대학이 1912년4월 배재학당 안에 설치됐다. 「아펜젤러」와 「언더우트」교사가 시작한 한국의 기독교 교육사업이 크게 성공을 거두자 미북감리회는 한국에 각 교파연
-
(7)재임용제 시행을 계기로 본 그 실상
전국의 대학 교원은 해방 직후 19개교 1천4백90명이던 것이 지금은 98개교 1만1천여명. 숫자로는 10배 가까이 늘었고 질적으로도 많이 개선됐다. 첫 한국인 교수가 탄생한 지
-
남기고 싶은 이야기들|전국학연
얘기의 방향을 돌려 고려대학교와 운동선수 「스카웃」에 얽힌 비화를 밝히고 넘어가야겠다. 고대에서의 운동선수 우대는 일제때부터 내려온 전통. 운동선수를 「스카웃」또는 「특별대우」하는
-
(35) |그 전설·실존·도명을 밝힌다|보천보 사건|이명영 집필 (성대 교수 정치학)
1937년6월4일 밤 10시 동북 항일 연군 제1로군 제2군 제6사장 김일성 (당시 36세·함남 출신·「모스크바」 공산 대학을 나온 후 적군에 있다가 만주의 항일 연군에 파견됨·김
-
"재봉틀 바늘·석유풍로·석쇠등 보내주셔요"
【동경=박동순톡파원】한국인 남편을 따라 북송된 일본인처들의 귀향운동을 벌이고 있는「이깨다」(지전문자·가명) 여사는 22일 북한에 사는 일본인처로부터 친정에온 편지 7통을새로 공개하
-
자가비판 일의 대한자세-잇단「캠페인」에 비친 한·일 관계의 단면
【동경=박동순특파원】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이 이웃해 있으면서도 상호간의 이해가 극히 미흡하다고 해서 흔히 한·일 관계를 『가장 가깝고도 먼 나라』라고 표현한다. 이러한 현실을 반성이
-
(928)제34화 조선변호사회(3)
3·1만세사건으로 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계속 정국이 소란하자 당시 전수학교 당국은 3월3일부터 실시키로 예정했던 졸업 시험을 늦추고 미루다가 나중에는 이를 포기하고 그대로 졸
-
(675)서북청년회
충남의 3사건 온천장에 든 남선「테러」의 총수 임일대표를 노린 백주의 기습 이었다. 임대표는 각지부를 뛰어 다니다 모처럼 대전 본부에 귀환, 유성에서 쉬던중 기습은 임동지가 목욕을
-
<도의문화『심포지엄』(46)말 언어와 생화
급속한 변화 속에서 유동하고있는 우리 사회의 여러 양상 중에서 말(언어)의 혼란처럼 우리의 정신적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단면은 별로 없을 것이다. 말은 의지나 의미를 전달하는
-
(하)|하원 외교 위 갤러리 청문회에서|북괴에 관한「스칼라피노」교수 증언
동아시아 지역의 평화를 위협하는 여러 가지 요인 중에서 소위「분단국가」가 제기하는 문제만큼 골치 아픈 요인은 없다. 본인은 이 자리에서 그러한 분단 국가의 하나인 북괴에 관해서
-
(161)|경성제국대학(15)|강성태 &해방과 함께 교명도 「경성 대학」으로 변경|47년에는 현재의 「서울대학」으로 다시 개교|일제가 세운 학교 다녔다고 욕먹은 졸업생도
해방되던 해에 졸업한 의학부 17회 졸업생 (법문학부 18회에 해당) 에는 강중구 (개업) 김세경 (우석 의대 학생) 노종문 (개업·이비인후과) 임창제 (개업) 함용주 (개업·냇
-
(154) | 경성제국대학 (8)|강성태
4회의 최식씨 (현 성균관대 법정대 교수·6회의 고인은 잘못임)는 영남 일대는 물론 전국적으로 알려진 경주 최 부잣집의 집안이다. 9대 진사에 12대 만석꾼인 최 부잣집의 종가에
-
남기고 싶은 이야기들(132)-우정 80년(12)강직순
한 세상 살아가노라면 슬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어릴 때 다니던 학교가 없어졌을 때 허전한 감정은 직접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상장하지 못할 일이다. 우리 나라의
-
선재과목 폐지에 맹휴로 항거|창씨 안한 박순천씨 교직 사퇴|미·일 감정 악화되자 미국인 교사들 돌아가|일제 동화 정책
3·1 운동 후 총독부는 표면적으로 소위 문학정책을 써 우리민족의 악학된 대일감정을 유화 시키려고 꾀했으나 안으로는 간섭이 점점 더 심해졌다. 모든 학교에서 우리말을 쓰지 못하게
-
(98)적치하의 3개월(11)|6·25 20주…3천여의 증인회견·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
(1) 북괴가 남한점령지역에서 실시한 여러 정책 중에서 가장 악명 높았던 것이 소위 「의용군」이란 미명하에 강행한 강제 모병이었다. 북괴가 남한의 인적·물적 자원을 서둘러 동원,
-
「데모」해산길에 봉변
4일상오11시쯤 서울대공대생 6백여명은 서울동대문구휘경동 중랑교에서 연좌 「데모」를 벌였다. 이날 상오9시30분쯤 교정에서 3선개헌반대 성토대회를 열고 교문을나선 학생들은 중랑교에
-
민족의 횃불|일본식민주의와 3·1운동|빈사상태서 사슬 끊고 궐기
올해는 3·1운동 50주년을 맞는 해다. 반세기 전 한민족은 거국적으로 일제의 탄압에 항거, 우리의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일어섰다. 이 투쟁은 우리 민족사에 길이 빛날 교훈을
-
(168)한·일 의원 간담회
일본은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나라다. 이 숙명적인 인연이 어느 한나라의 이해관계에 악용될 수 없음은 2차대전이 남긴 엄숙한 역사의 교훈이다. 특히 비대해
-
동백림 북괴 공작단 사건 진상
북괴는 6·25사변 때 완전히 궤멸되었던 남한의 지하세력을 재건하기 위해서 대남 공작기구를 정비강화하고 직접 또는 일본을 통해서 간첩을 침투시키는 한편 구미지구를 통한 간첩의 합법
-
한국여성사의 문제점들-이현희
우리 나라 여성사의 시발점은 두말할 나위 없이 한국사가 시작될 때로부터 그 근원을 잡아야 할 것이다. 그러면 적어도 여성사의 나이는 2천년이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. 그러나 아직